
슈 반죽의 성공률은 호화 과정에서 결정됩니다. 제과 제빵에서 호화란 밀가루의 전분 구조를 열로 풀어내는 과정을 의미하는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반죽이 부풀지 않거나 구워지는 도중 꺼져버립니다. 저는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여름만 되면 입맛이 완전히 사라지는데, 그럴 때마다 상큼한 레몬 디저트가 유일한 구원이었습니다. 이번에 레몬 에끌레어를 직접 만들어보면서 여름 대비책을 마련했는데, 생각보다 호화와 온도 관리가 성패를 가르더군요.
호화와 온도 관리(슈 반죽의 핵심)
슈 반죽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호화(gelatinization) 과정입니다. 여기서 호화란 전분 입자가 물과 열을 만나 팽창하면서 점성이 생기는 화학적 변화를 뜻합니다.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으면 반죽 속 수증기가 팽창할 때 구조를 지탱하지 못해 에끌레어가 찌그러지거나 터집니다.
물, 우유, 무염버터, 소금, 설탕을 냄비에 넣고 가열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버터가 완전히 녹는 타이밍입니다. 액체가 끓기 전에 버터가 전부 녹아야 하는데, 저는 처음 만들 때 이 부분을 대충 넘겨서 반죽이 균일하게 섞이지 않았습니다. 버터가 차가운 상태라면 반드시 작게 썰어서 넣고, 주걱으로 계속 저으면서 녹여야 합니다.
액체가 100도에 도달해 중간 부분까지 바글바글 끓어오르면 불을 끄고 체 친 중력분을 한 번에 넣습니다. 이때 많은 분들이 "대충 끓었겠지" 하고 일찍 밀가루를 넣는데, 이게 실패의 주요 원인입니다. 온도계로 정확히 100도를 확인하거나, 적어도 냄비 중앙까지 큰 기포가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출처: 한국제과학회).
밀가루를 넣은 후에는 중불에서 반죽을 볶아 호화를 진행합니다. 이 단계에서 반죽을 주걱으로 계속 자르고 펼치면서 골고루 익혀야 하는데, 제 경험상 냄비 바닥에 얇은 막이 생길 때까지만 볶는 게 적당합니다. 너무 오래 볶으면 수분이 과도하게 증발해서 반죽이 뻣뻣해지고, 반대로 호화가 덜 되면 반죽에 찰기가 없어 구울 때 부풀지 않습니다.
호화가 끝난 반죽은 60도 이하로 식힌 후 계란을 넣어야 합니다. 반죽이 너무 뜨거우면 계란이 익어버리기 때문에 온도 관리가 중요한데, 저는 볼에 반죽을 펼쳐서 10분 정도 식혔습니다. 계란은 반드시 실온 상태여야 하고, 처음에는 1/3만 넣고 주걱으로 자르듯이 섞으면서 점차 흡수시킵니다. 이때 공기가 들어가면 구울 때 에끌레어가 터질 수 있으므로 거품기가 아닌 주걱을 사용합니다.
최종 반죽의 농도를 맞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에끌레어 반죽은 슈 반죽보다 약간 되직해야 터지지 않고 모양이 잘 유지됩니다. 저는 첫 시도 때 반죽을 너무 묽게 만들어서 구울 때 옆으로 퍼지면서 못생긴 모양이 되었습니다. 주걱으로 떠올렸을 때 천천히 떨어지는 정도가 적당한데, 마지막 계란은 반죽 상태를 보면서 조금씩 추가하는 게 안전합니다.
이탈리안 머랭
에끌레어 위에 올릴 이탈리안 머랭(Italian meringue)을 만들 때는 설탕 시럽의 온도가 핵심입니다. 이탈리안 머랭이란 뜨거운 설탕 시럽을 휘핑한 흰자에 부어 만드는 머랭으로, 프렌치 머랭보다 안정적이고 광택이 뛰어난 게 특징입니다. 시럽 온도가 118도에 도달했을 때 흰자 쪽에 부어야 하는데, 이 타이밍을 놓치면 머랭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습니다.
시럽이 108도 정도 될 때 핸드믹서로 흰자를 휘핑하기 시작하는데, 시럽을 부을 시점에 흰자가 최소한 풍성한 맥주 거품 정도로 올라와 있어야 합니다. 제가 처음 만들 때는 흰자 거품이 충분히 올라오기 전에 시럽을 부어서 머랭이 끈적하게 늘어지는 실패를 겪었습니다. 시럽은 실처럼 가늘게 천천히 부으면서 계속 휘핑해야 하는데, 한꺼번에 많이 붓거나 거품기 날에 직접 부으면 시럽이 굳어버립니다.
시럽을 다 넣은 후에는 1~2분간 고속으로 휘핑하다가 중속으로 낮추고, 볼이 미지근하게 식을 때까지 계속 휘핑합니다. 머랭이 단단해지기 시작하면 속도를 점점 낮춰서 저속으로 마무리하는데, 이 과정에서 큰 기포를 제거하고 조직을 탄탄하게 만듭니다. 완성된 머랭은 거품기를 들어 올렸을 때 뾰족하고 단단한 뿔이 생깁니다.
레몬 커드의 온도 과학
레몬 커드를 만들 때는 계란이 익지 않는 온도 범위를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레몬 커드(lemon curd)란 레몬즙, 계란, 설탕, 버터를 유화시켜 만든 크림으로, 82~83도에서 농도가 걸쭉하게 변하면서 완성됩니다. 여기서 유화(emulsification)란 본래 섞이지 않는 기름과 물 성분이 균일하게 섞이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레몬즙을 먼저 데운 후 계란에 조금씩 부으면서 섞는데, 이 과정을 템퍼링(tempering)이라고 합니다. 뜨거운 레몬즙을 한 번에 부으면 계란이 익어버리므로 천천히 부으면서 계란의 온도를 점차 올려야 합니다. 혼합물을 다시 냄비에 옮겨 중불로 저으면서 끓이는데, 82~83도 정도에서 갑자기 텍스처가 되직하게 변합니다. 저는 온도계 없이 감으로 했다가 계란이 익어서 덩어리가 생긴 적이 있어서, 이후로는 반드시 온도계를 사용합니다(출처: 식품안전나라).
불에서 내린 직후에도 냄비 잔열로 계란이 익을 수 있으므로 계속 저어주고, 젤라틴을 넣어 녹인 후 체에 한 번 거릅니다. 이때 커드 온도가 너무 높으면 버터를 넣었을 때 기름이 분리되므로, 35~40도까지 식힌 후 실온 버터를 넣고 핸드블렌더로 유화시킵니다. 완성된 레몬 크림은 냉장고에서 2시간 정도 굳혀서 짜기 좋은 텍스처로 만듭니다.
에끌레어를 구울 때는 컨벡션 기능을 끄고 상하 열선 모드로 170도에서 50분간 구워야 합니다. 컨벡션(convection) 오븐이란 내부 팬으로 열풍을 순환시켜 고르게 굽는 방식인데, 슈 반죽처럼 부풀어야 하는 제품은 열풍이 너무 강하면 표면이 빨리 굳어서 터지거나 못생긴 모양이 됩니다. 저는 루미 오븐처럼 컨벡션을 켜고 끌 수 있는 제품을 사용해서 에끌레어를 성공적으로 구울 수 있었습니다.
여름이 오기 전에 레몬 에끌레어를 미리 연습해 둔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상큼한 레몬 커드와 부드러운 머랭, 바삭한 슈의 조합은 더위로 사라진 입맛을 되살리기에 충분했습니다. 호화와 온도 관리만 정확히 한다면 누구나 집에서 만들 수 있으니, 여름 대비 디저트로 도전해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