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 하나에 2천 원. 빵집에서 작은 슈크림 하나를 살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도대체 저 작은 반죽 안에 무엇이 들어있길래 이 가격을 받는 걸까요. 제가 처음 슈를 만들어본 건 딸아이가 유치원 하원길에 빵집 앞에서 "저거 엄청 큰 홈런볼이야!"라며 사달라고 졸랐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그냥 사줄까 싶었지만, 벌써부터 바깥 음식에 맛을 들이면 안 되겠다 싶어 집에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죠. 그렇게 시작된 제 슈 만들기는 생각보다 험난했습니다.

호화 과정과 불조절
슈가 부풀어오르는 비밀은 '호화(糊化)'라는 과정에 있습니다. 여기서 호화란 밀가루의 전분 입자가 뜨거운 물과 만나 구조가 풀어지면서 점성이 생기는 화학적 변화를 뜻합니다(출처: 식품과학기술대사전). 쉽게 말해 뜨거운 냄비에서 버터 65g, 물 90ml, 소금 한 꼬집을 끓인 뒤 박력분 65g을 한 번에 넣고 익반죽을 하는 겁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전분이 물을 흡수해 팽창하고, 반죽에 탄력이 생기면서 오븐에서 수증기가 팽창할 때 반죽이 찢어지지 않고 속이 빈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제가 처음 슈를 만들 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이 호화 과정이었습니다. 불 조절을 제대로 못 해서 반죽이 냄비 바닥에 들러붙거나, 밀가루를 너무 천천히 풀어서 멍울이 생기는 일이 반복됐거든요. 참고 자료에서는 밀가루를 넣고 볶는 과정을 2분 안에 마무리하라고 하는데, 실제로 해보니 이게 정말 중요합니다. 약불로 줄인 뒤 밀가루를 체에 걸러 한 번에 넣고, 주걱으로 빠르게 뭉개면서 풀어야 멍울 없이 매끈한 반죽이 완성됩니다.
코팅팬보다는 스텐팬을 쓰는 것도 핵심입니다. 코팅팬은 열전도가 고르지 않아 반죽이 부분적으로 타거나 덜 익을 수 있거든요. 냄비 바닥에 하얗게 막이 생기면 불을 끄고, 뜨거운 김이 어느 정도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반죽이 너무 뜨거우면 계란을 넣었을 때 익어버리고, 너무 식으면 계란과 반죽이 분리되기 때문입니다. 이 타이밍을 맞추는 게 생각보다 까다로웠습니다.
반죽 농도 조절
계란 2개(약 123g)를 3~4번에 나눠 넣으면서 반죽을 섞는 과정이 슈의 성패를 가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점탄성(粘彈性)'입니다. 점탄성이란 반죽이 끈적이면서도 탄력을 유지하는 성질을 말하는데, 이 상태가 되어야 오븐에서 부풀어 오르면서도 모양이 유지됩니다. 주걱으로 떠서 떨어뜨렸을 때 질지 않고 무겁게 뚝 떨어지는 농도가 적당합니다. 너무 묽으면 퍼지고, 너무 되면 부풀지 않습니다.
제가 실제로 만들면서 느낀 건, 계란을 넣는 속도가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겁니다. 한 번에 많이 넣으면 반죽이 분리되면서 물기가 생기고, 너무 조금씩 넣으면 팔이 아플 정도로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계란 한 개를 두 번에 나눠 넣는다고 생각하고, 매번 반죽과 완전히 섞일 때까지 저어준 뒤 다음 계란을 추가하는 방식이 가장 안정적이었습니다.
반죽을 짤 때는 키세스 초콜릿처럼 뾰족하게 짜고, 물을 뿌린 뒤 손으로 뾰족한 부분을 눌러줍니다. 이렇게 하면 겉면이 바삭하게 구워지면서도 속은 부드럽게 익습니다. 오븐은 200℃로 예열한 뒤 상단 190℃, 하단 160℃에서 20분간 굽고, 중간에 절대 문을 열지 않습니다. 오븐 문을 열면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부풀어 오르던 반죽이 주저앉거든요. 굽기가 끝나도 바로 꺼내지 않고 10분간 잔열에서 속까지 익히는 것도 빼먹으면 안 됩니다.
크림 채우기
크림은 커스터드와 생크림을 섞어 만듭니다. 계란 노른자 2개(31g), 설탕 30g, 옥수수 전분 20g, 바닐라 오일 6~7방울을 섞은 뒤 우유 200ml를 넣고 약불에서 저으며 끓이면 커스터드 크림이 완성됩니다. 여기에 휘핑한 생크림 150ml와 설탕 20g을 섞으면 부드러우면서도 풍미 있는 슈크림이 됩니다. 짤주머니에 담아 식힌 슈 밑바닥에 구멍을 뚫고, 슈가 무거워질 때까지 크림을 채워 넣으면 완성입니다. 제 경험상 크림을 너무 많이 채우면 첫입에 터지고, 너무 적으면 허전하니 슈를 들었을 때 묵직한 느낌이 들 정도가 딱 적당합니다.
슈크림 만들기의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호화 과정에서 밀가루를 2분 이내에 빠르게 익반죽한다
- 계란을 나눠 넣으며 점탄성 있는 농도로 반죽을 완성한다
- 오븐 온도를 정확히 맞추고 중간에 절대 문을 열지 않는다
- 크림을 슈가 무거워질 때까지 충분히 채운다
처음엔 딸아이의 한마디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슈크림 하나에 2천 원을 주고 사는 게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죽을 익히고, 계란을 섞고, 정확한 온도로 굽고, 크림을 만들어 채우는 모든 과정이 결국 그 가격에 녹아 있더라고요. 집에서 만들면 재료비는 절약되지만, 시간과 정성은 그 이상 들어갑니다. 그래도 막 구운 슈의 바삭한 겉면과 부드러운 크림을 한입 베어 물 때의 만족감은, 빵집 슈와는 또 다른 맛입니다.